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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보태는 1그램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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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99회 작성일 22-12-2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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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제1538회 2021.11.19.


세계는 지구촌이 아니라 지구 집이다.

우리는 한국인이자 세계시민이다.

우리 모두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힘, 해야 할 일을 할 자신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않을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걸 가로막는 건 불안 두려움이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받은 친절위로, 내가 두 손으로 정성껏 전해주고 싶었던 사랑,

그리고 인생의 고비에서 많은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작은 용기에 대해 보태는 1그램의 용기.

꼭 하고 싶다면 눈 딱 감고 그 자리에서 딱 한 발짝만 앞으로 나가보세요.


저에게 지난 몇 년간 큰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으로 불렸지만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 나이 60세에 결혼을 했다. 2002년 아프가니스탄 구호 현장에서 상관이었던 네덜란드인 안토니우스 반 주트펀(안톤)을 만나 매년 구호활동을 펼쳤고 2017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는 서로의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3개월은 한국에서 같이 살고, 3개월은 네덜란드에서 같이 산다.

그리고 6개월은 서로의 일을 위해 현장에서 뛰며 중간에 만나 즐기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 10번째 책을 썼다. 결혼 이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이다.

오늘 광주에 온 것이 정말 좋은 시간이기를 기억하고 싶다. 우리는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뜨겁게 물들어야 한다. 여러분과 함께 좋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코로나19로 인해 반쪽만 보인 얼굴이라도 전체를 보고 싶다.

오늘의 주제는 용기이다.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는 저를 국제구호활동에 참가하고 시민학교 교장으로

활동하게 만든 물건이 있다. 바로 세계지도이다. 세계지도 한 장이 저의 인생지도를 바꿨다.

세계지도가 없었다면 여행도, 구호도 세계시민학교도 없었을 것이다.

부친이 기자였는데 딸 셋, 아들 하나를 세계 시민으로 키우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세계지도 한 장을 구해왔다.

거기서 크고 작은 여러 나라를 볼 수 있게 됐다. 그후 우리 집은 현관부터 마루, 방, 천장 등 곳곳에 세계지도를

붙여놓아 볼 수 있었다. 그때 생각이 세계는 넓지 않다고 여겼다.

저녁이면 부친께서 식사를 끝내고 큰 세계지도를 펼치도록 하고나서 도시 이름을 묻거나 나라 이름을 묻는 퀴즈를 내곤 했다. 우리들은 세계지도를 달달 외우곤 했다. 어느 날 지도를 보는데 모든 나라가 붙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곤 물었다. “아빠, 나라들이 이렇게 붙어있으면 세계여행을 할 수 있겠네요?”

“그럼 갈 수 있지. 한 번 가볼래!”라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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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과의 만남

초등학교 2학년 때 한 반에 85명이 있는 친구들 앞에서

“다음에 커서 다리가 튼튼하면 걸어서 세계일주 여행을 할꺼야”라고 말했다.

모두 ‘허~헉’ 하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머릿속에 자신들이 사는 성동구 금호동이라는 동네만 그려져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난생 처음 ‘세계일주’라는 말을 듣고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사람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세계여행을 하는데 우리나라 말이 안통한다는 것을 알았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AFKN를 무조건 들었다. 그리고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제가 갖고 다니는 모든 것에는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다.

쇼핑백, 안경지갑, 무릎담요 등 모든 게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다.

33세에 처음 세계 일주를 떠났다.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모아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머릿속에 세계지도가 들어있고 영어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모두 시집가야 한다든가, 어떻게 할 수 있겠냐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떠날 줄 알았기 때문에 말리지 않았다. 일단 출발하는 것은 혼자 떠나기로 결심했다.

다음은 오지로만 다닌다. 그리고 육로로만 다닌다 였다.

우선 대륙간에는 비행기를 타고 다음부터 육로 여행을 했다.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를 횡단하고 중동, 터키, 아프가니스탄, 모스크바에서 횡단열차를 타고 북경, 천진 그리고 배를 타고 인천으로 왔다.

2년이 걸렸다. 다음에는 남아메리카 끝단에서 출발하여 또 북진하면서 미국을 거쳐 알래스카까지 간 다음 한국으로 돌아왔다. 약 6년 동안 여행한 기록인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을 4권으로 써서 내놓았다.

그런데 여행은 가장 싼 음식, 특히 볶음밥 위주로 먹었고, 가장 싼 완행열차나 버스를 탔다.

돈이 떨어지면 돌아온다는 계획이었지만 너무 싸게 다닌 덕분에 돈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이들이 면역력이 부족해 죽는 경우가 많았다. 한 마을에서는 20여명의 아이가 있는데 그들과

지내다가 도시에 며칠 다녀오면 급성 설사로 인해 죽거나 누워있는 일이 많았다.

3초마다 아프리카 어린이를 죽이는 4대 허접한 질병은 설사, 말라리아, 기침이 급성폐렴이고 다음으로 홍역이다. 이들 질병은 1달러짜리 링거나 약이 있으면 충분히 살 수 있는 병들이었다. 정말 아까운 생명들이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람 살리는 일에 저의 재능을 쓰고 싶었다.

살려야 하는 아이들과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일에 뛰어들었다.

어느 날 월드비전에서 전화가 왔다. 전 세계 100여 개국 사무실에서 2억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단체였다.

이곳에서 나에게 홍보팀장 겸 긴급구호팀장 자리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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